1977년에 출간된 이래 오랫동안 민중문학의 전범으로 자리매김해온 송기숙 장편소설 <자랏골의 비가>가 새롭게 출간되었다. 송기숙은 한국 현대사의 엄혹했던 시절과 정면으로 맞서온 작가이다. 치열한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으며, 깊이있는 역사의식과 토속적인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담긴 다수의 뛰어난 작품들을 선보이며 민족문학의 중추역을 담당해왔다. 그의 첫 장편 <자랏골의 비가>는 3.1운동 전해(1918)부터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을 거쳐 4.19혁명(1960)에 이르기까지 남도의 한 촌락이 겪은 수난과 항거의 역사를 기록한 우리 민중문학의 역작이다. 이번 개정판은 옛 표기를 바로잡고 장정과 디자인을 새로이 하였다. 작품의 배경은 전라도의 어느 벽지인 '자랏골'이다. 순박하지만 평생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자랏골은 물론 인근 지역의 제일가는 유지인 이양문 일가의 존재이다. 이양문은 일제 치하에선 일본의 비호 아래 위세를 떨치고, 해방 이후엔 자신이 독립운동자금을 비밀리에 대왔다는 거짓말과 국회의원 아들의 위세에 힘입어 자랏골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다. 소설은 자랏골 최고의 명당자리에 이양문이 자기 어머니의 묘를 이장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중심축으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