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이 우거진 산 중턱. 낯빛이 유달리 하얀 중년인이 나무에 기대 장탄식을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초승달의 한 끄트머리가 나뭇가지에 걸려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야심한 밤. 그는 초승달이 마치 자신처럼 느껴져 기분이 울적했다. 영원히 이인자로 만족해야 하는 삶. 신타귀 장로가 근처에서 머뭇거리다가 그에게 다가왔다. “소교주.” 방우는 그를 흘낏 보았다가 다시 밤하늘로 눈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말씀하세요.” 신타귀는 입술을 한참이나 여짓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그 존재를…… 강시왕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교주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잘 모르겠어서 말이지.” 방우는 짜증이 묻어나는 어조로 대꾸했다. “교주님이라고 해야죠. 무상의 몸뚱이를 차지하고 있는 혼백은 분명 교주님이니까요. 이혼대법이 정말 성공할 줄은…….” 그는 말꼬리를 흐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심사가 뒤틀려서 쓸데없는 말까지 뱉을 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