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해학적이고도 신랄하고 가차없는 문체로 인생의 희비극적인 단면을 절묘하게 포착해 내고 사랑과 결혼에 대한 통념 속에 드리운 허위를 폭로했던 작가 은희경. 그는 이제 사랑을 넘어 삶과 죽음에 보다 바싹 다가서고자 한다. 햇수로는 3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작품은 저자의 작가생활 십년 내공의 힘으로 벼린 전혀 다른 이야기다. 즉, '타인의 이야기'만 써 왔던 저자가 영준과 영우 형제의 갈등과 화해를 담은 일종의 성장 소설 속에,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들에 의해 회고되는 어느 지방 소도시 K읍. 그곳은 우리가 추방당한 일종의 낙원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리하여, 우리는 낙원으로부터 추방당한 이들로서, 고향에 대한 한 영원한 방문자일 뿐이며 살아서도 객사귀(客死鬼)처럼 떠돌아다닐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들이라는 작가의 섬뜩하고도 슬픈 전언을 듣게 된다. 연대기적 사건 사실들을 유려하고 섬세한 문체로 엮어가며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사실들이 거짓과 비밀이었음을 밝힘으로써 삶의 불완전성을 폭로하는 〈비밀과 거짓말〉. 공들인 문장과 문장 사이의 긴장감은 여전하면서도 거기서 느껴지던 발랄함이라든가 경쾌함 대신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무겁고도 깊은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