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며, 3.1운동을 후원하고 제암리 사건을 세계에 알린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 “나는 강하고 굳세 호랑이와 같은 마음으로 조선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 “나는 내가 보고 들은 일을 자세히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한 톨의 거짓도 없이 제암리에서 보고 들은 진실을 써 내려갔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태극기를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 뒤로 사진을 찍는 한 외국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하였고, 3.1운동을 후원하고 화성 제암리 사건과 3.1운동 정신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입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고 있으며, 1968년에 건국공로훈장을 받았고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아내와 함께 선교사로 캐나다에서 조선으로 건너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이때 한국 이름을 석호필(石虎弼)로 지었습니다. 석호필 이름에는 ‘철석같이 굳은(石) 의지와 호랑이(虎) 같은 마음으로 한국인을 돕는(弼)’ 사람이 되겠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19년 2월, 3.1운동이 있기 직전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이갑성 선생을 만나 3.1 만세 운동을 기록하고 해외에 알리는 일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1919년 4월 15일 제암리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 현장을 방문하고, 그 현장을 기록한 보고서를 캐나다 선교 본부에 제출하였습니다. 이 뒤로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 정신과 제암리 사건과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했습니다. 캐나다에서 대학 교수를 은퇴한 뒤에는 한국에서 살기로 결심하고, 한국에 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봉사 활동을 하면서 한국의 인권 신장과 4.19 혁명을 격찬하는 등 민주화와 관련한 강연도 꾸준히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