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질서를 뒤엎는 악마 사탄은 곧 증오와 파괴인 동시에, 파멸의 화신이며 그 자체로 이미 존재라든가 창조, 그리고 신과는 대치되는 것을 의미한다. 악마는 우주질서에 대한 반역이고 폭압적 왕국에서도 기죽지 않는 독자적인 존재이며, 하나됨에 대한 반대개념이다. 악마는 조화로운 우주 안에 존재하는 불협화음이고 규칙의 예외이며, 보편성 속의 특이함이다. 그는 예측 불가능한 우연으로 질서를 깨트린다. 악마는 분산시키고자 하는 의도이며 일정한 행동을 강제하는 신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엎는, 근원에 대한 갈망이다. 저자인 폴 카루스는 악마 사상이 신에 대한 사상과 나란히 발전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악마 역시 신과 똑같이 인간 경험의 실재적인 부분을 상징하고, 양자 모두 제도화되고 인격화된 존재들이다. 신과 악마는 인간의 마음이 창조해 낸 것이지만, 악마가 단순한 악의 상징일 뿐이라고 해서 악이 덜 실재적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