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시기, 세상과의 한 판 승부를 건 젊은이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온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을 때, 조선의 백성들에게 그것은 온 우주가 바뀌는 변화였고, 적응하지 못할 흐름이었고, 그리하여 모든 것을 빼앗는 악마였다. 개항기는 거대한 절망의 시기로 도래했다. 과거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입에 풀칠하기 힘든 시기였고 그래서 절망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에도 새로운 흐름을 살아 있는 눈빛으로 관찰하고 이해하고 마침내 그 변화의 흐름에 몸을 싣는 조선의 스페셜리스트들이 있었다. 그들은 예리하게 새 시대의 기미를 포착하여 저마다의 기회를 움켜쥐었다. 금광을 통해, 인삼을 팔아, 기업을 일으켜 저마다 새 시대를 헤쳐나갈 힘을 키웠다. 작가는 『뱅크』에서 바로 그 조선의 스페셜리스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뱅크』에서 작가 김탁환은 오늘날 우리들 삶의 화두인 ‘자본’을 탐구하기 위해 100년 전 민족자본이 싹트려 했던 시점을 포착했다. 찬란한 욕망 가운데 탄생해 생명체처럼 증식하고 탐욕 속에서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자본의 속성을 투시하면서, 작가는 주인공들을 그 권모술수와 살인, 음모와 치정이 난무하는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몽테크리스토 백작』보다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는 복수극을 직조해냈다. 장철호와 최인향, 그리고 박진태. 개화기의 젊은 그들이 인천과 개성, 그리고 서울을 오가며 어떻게 욕망했고, 어떻게 시대의 주역이 되었는지 그리는 이 소설은 한편으로는 ‘자본의 악마성’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선한 자본’에의 희망을 발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