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집『구멍 집』에는 순서대로 영글고 또 사위어 가는 우리들의 시간이 담겼다. 시인은 너른 시야로 땅과 푸나무와 짐승과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하나하나 짚어 간다. 흰둥이와 아이가 나란히 먼 데 일갓집에 심부름을 가는 풍경, 상수리나무가 지난 날 만났던 다람쥐 어깨를 툭툭 치며 반가워하는 장면, 큰 눈 얹혀 팽팽해진 겨울 대밭의 모습 등이 풍부한 계절의 정취를 바탕으로 맞물려 흘러간다. 제주에 사는 화가 배중열의 그림은 독특한 시적 시공간을 고유의 필치로 부드럽게 물들여 주었다. 뻔하지 않은 유머와 강렬하고 조화로운 색조는 각 편의 시를 마치 처음 만나는 장면처럼 독자에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