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총살, 죽음, 독재, 인권 탄압…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시리도록 아픈 시간들 소녀가 태어나던 날, 그곳은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간 ‘더러운 전쟁’ 중이었어. 한 소녀가 태어납니다. “침묵만이 살길이다!” 거리 곳곳에 벽보가 나붙고 매일이다시피 총살이 자행되던 ‘더러운 전쟁’이 한창이던 때, 전쟁의 모든 소리를 덮어 버릴 듯이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며 한 소녀가 태어납니다. 서슬 퍼런 군부 독재 아래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침묵하지만, 폭력의 소리는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소녀는 들어도 말하지 않고 보고도 전하지 않는, ‘살아남는 법’을 배우며 자라납니다. 소녀의 부모는 이런 정권에 저항하는 지식인들입니다. 지하 비밀 방에서 모임이 있는 날이면, 소녀의 엄마는 말합니다. “우리 딸, 멀리 가, 아주 멀리.” 소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습니다. 그저 말없이 멀리 떨어진 정원으로, 레몬트리 가장 높은 가지로 올라갑니다. 소녀를 찾는 엄마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오랫동안 공상에 잠깁니다. 그날도 소녀는 언제나처럼 레몬트리 가장 높은 가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듣습니다. 사나운 군화 소리, 담을 넘는 소리, 고함, 비명, 울음소리, 탕탕탕탕탕… 열세 번의 총소리. 그리고 온세상이 고요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