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은 반드시 공동선에 적용되지는 않지만 지혜는 항상 그렇다 심리학자이자 《지혜의 탄생》을 쓴 로버트 스턴버그는 “지능지수 측정과 향상에 대한 지나친 관심 때문에 우리가 더 중요한 것을 놓쳤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우리는 ‘지혜’에 관심이 없다. 학교에서는 지혜를 가르치지 않고, 대개의 경우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시험 점수를 올리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할 때, 즉 세속적인 성공에 도움을 줄 가망이 전혀 없는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추구하는 행위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은 ‘지혜로워’지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의 지혜는 ‘지식’이나 ‘학식’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지식이 많음을 지혜로움으로 오해해서 생기는 일이다. 그러나 지식은 지혜와 다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 해도, 심지어 철학책을 읽고 이를 섭렵한다 해도, 이렇게 얻은 것은 지식이지 지혜가 아니다. 지혜는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없다. 지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의 지능과 지식 발전을 중심에 둔 교육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 그 결과 과학과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지능지수 역시 향상되었다. 하지만 이는 세상을 몇 번이나 파괴할 핵무기나 테러와 같은 재난도 초래했다. 세계 곳곳에서 테러나 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한국은 핵무기의 위협과 전쟁 발발의 위험이 그 어느 나라보다 높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 팽배한 각종 갈등과 사회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교육을 덜 받고 지식이 모자라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지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인간의 자부심 또는 오만을 견제하는 평형추 역할을 해온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