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의 에세이. 이 책은 25종의 책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첫 번째 책은 <꼬마 니꼴라> 3권이다. 그런데 장 자크 상페의 그림이 곁들여진 르네 고시니의 것이 아니라, 김모세가 구성하고 이규성이 그림을 그린 판본이다. 또한 한강의 소설 <내 여자의 열매>에 붙인 장 제목은 '이십대의 스포츠'이다. 뜬금없이 르 코르뷔지에의 <작은 집>과 술에 대한 만화 <스트레이트 온 더 락>을 한데 엮어 이야기하기도 한다. 책을 나열한 책이니, 독서일기라 생각한다면 추천사를 쓴 소설가 김중혁의 말대로 '미로'에 빠지고 만다. 저자는 서교동에서 작은 책방 '유어마인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저자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책들의 충실한 독자이기도 했다. 훌륭한 독자가 저자의 위치를 획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에 대한 책'을 쓰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손쉬운 예상마저 보기 좋게 배신한다. 저자는 오히려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에서 이야기한 "작가의 죽음의 대가로 우리가 얻는 것은 독자의 탄생이어야 한다"는 말에 충실하다. 저자는 롤랑 바르트의 말에 기대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주 훌륭한 '독자의 탄생'을 목격하게 된다. 이 책은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책의 작가나 줄거리 소개는 물론이고 작품의 의미를 찾지 않는다. 심지어 각각의 책에서 엄청난 분량의 문장을 인용해놓았지만, 그 인용문들은 저자의 이야기 속에 스며들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