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챈들러의 마지막 장편소설 [원점회귀]. 이 소설의 전반을 지배하는 정서는 짙은 니힐리즘이다. 이는 나이듦에 대한 자각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건의 전모를 밝힌 말로는 지치고 피곤한 상태에서 ‘텅 빈 벽과 무의미한 방과 무의미한 집’으로 돌아온다. 술을 한 잔 마실까 하지만 그것도 그만 둔다. ‘그 누구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강철 같은 내면이 아니고선 그 어떤 것도 약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깊은 니힐리즘에 근거한 이런 자발적 고립은 소설의 말미 앞의 소설에서 만난 후 1년 반 동안 헤어져 있던 린다 로링에게서 전화가 오고 청혼을 받고 그를 수락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암시하면서 해소된다.